불려표조(怫戾僄窕)
다산의 두 아들 초명(初名)은 농사일을 배우라는 뜻의 학가(學稼)와 학포(學圃)다. 당시 벼슬길에서 겪은 다산의 환멸이 느껴진다. 1801년 다산이 강진으로 귀양을 떠났을 때, 큰아들이 18세, 둘째는 15세의 예민한 나이였다. 한순간에 폐족이 되자 두 아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을 추스르지 못했다.
강진에서 다산은 두 아들 걱정을 달고 살았다. 큰아들은 불끈하며 제 성질을 못 이기는 '불려(怫戾)'한 성품이 문제였고, 둘째는 표조(僄窕) 즉 진중하지 못하고 경박한 것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각각 '화기재잠(和己齋箴)'과 '경기재잠(敬己齋箴)'을 지어주었다. '화기재잠'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학가는 성질이 불끈하며 사나운 점이 많으니 그 병통을 고치려면 그 방에 '화기재'라고 이름을 걸고, 학포는 성품이 간혹 경박하므로 그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그 방을 '경기재'로 이름 붙여라. 이에 각각 잠(箴)을 한 편씩 지어서 경계한다."
화기재(和己齋)는 자신을 온화하게 가라앉히는 집이고, 경기재(敬己齋)는 몸가짐을 공경스럽게 갖는 집이다. 큰아들에게는 화(和)를 간직해야 사물이 조화를 얻고 삿된 정을 말끔하게 씻어낼 수가 있다면서 "말을 부드럽게 하고 낯빛을 온화하게 가져라(兪兪其辭 溫溫其色)" "평소에 길러두지 않으면 나중에 잘되어도 혹 순수하지 않게 된다(養之弗素 達罔或純)" "목소리와 낯빛, 행동거지는 네 마음 씀에서 말미암는 것이다(聲容曁動 繇汝心工)"라고 했다.
둘째에게는 "네가 너를 공경하지 않는데 누가 그 모습을 본받겠니? 마음을 붙잡고 간직해서 함양하여 길러야지(汝不汝敬 孰踐其形. 維操維存 乃涵乃養)"로 시작해서, "재갈 문 듯 삼가서 정신을 모으고 뜻을 고정해, 하는 말은 법에 맞고 몸가짐은 공손해야 한다(愼乃銜橛 神凝志定, 出口惟法 施體維恭)"고 다짐을 받았다.
두 아들은 돌에다 이 당호를 새겨 평생 공부의 화두로 들었다. 불끈하던 학가는 뒤에 이름을 학연(學淵)으로 고쳐 연못처럼 깊고 듬직해졌다. 경박하던 학포는 학유(學游)로 고쳐 육예(六藝)에 노니는 묵직한 사람이 되었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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